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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근대화 시절 경기 소리의 음반 (2편)

대한제국시절 발매된 음반들

1편에서 계속

 

근대시절 제작된 경기소리 음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열강의 침탈과 해외의 음반시장

앞서 우리나라에서도 유성기가 보급되었고 일본을 통해 음반회사들이 들어왔다고 하였습니다. 1876년 강화도조약이후 미국, 영국, 러시아, 독일, 청나라, 프랑스 등 서구 열강이 침투해오기 시작합니다. 식민지 침탈의 시대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으나 여전히 아시아권은 서구 열강에게 남은 매력적인 땅이었습니다.

 

수많은 열강들이 각축을 벌였는데 뜻밖에도 이 경쟁에서 일본이 승리합니다. 1900년대는 러일전쟁이후 일본이 서서히 우리나라를 빼앗기 시작합니다.

암울했던 이 시기에 우리나라의 예술은 어떠했을까요? 세계에서 손꼽히는 음반회사들이 우리나라에 음악을 취입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직접 우리나라로 들어온 것은 아니었으며 일본과 중국을 통해 들어옵니다.

 

일본이 크게 발전한 것은 아니었지만 한반도를 놓고 다툰 열강과의 경쟁에서 승리함으로 앞날에 대한 기대감이 컸습니다. 그 덕분에 일본경제가 호황을 맞게 되었으며 세계 여러기업들이 하나 둘 씩 일본에 진출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음반사들은 아시아 시장에서 일본의 잠재력에 주목하여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선봉에서 있었던 회사는 미국의 콜롬비아사입니다.

지금은 낡은 것이 되었으나 당시엔 이 기술이 세계표준이었습니다.

콜롬비아사는 처음에는 도쿄에서 발매를 하였는데 나중에는 인접도시에서도 이 작업들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음반은 30장 정도 발매 되었다 하는데 대부분이 오사카에서 발매한 것이라 합니다. 이 때 발매된 음악은 우리나라 전통소리였습니다. 유산가, 적벽가 같은 잡가, 백구사, 황계사 같은 가사들 그리고 남도잡가와 판소리가 녹음되었습니다.

 

빅타사는 앞서 1편에서 잠깐 언급한대로 후발주자로 뛰어들었습니다. 대략 1907년 이후로 일본에 진출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콜롬비아사와 달리 빅타사는 우리나라에 직접와서 음반을 녹음했음이 자료로 남아있습니다. 음반 녹음에 있어서는 더욱 적극적이었고 연주자를 직접모으기도 하고 콜롬비아사에 비해 훨씬 많은 곡을 녹음하였습니다.

 

빅타사에서 녹음한 경기소리는 소춘향가, 유산가, 적벽가, 등이 있습니다. 빅타사의 음반은 거의 100여곡의 음반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요. 현재로써는 10개남짓한 음반만 발견되었습니다. 이 때 녹음했던 사람은 가객과 기생, 율객들이며 박팔괘, 향선, 옥도, 김재호, 이정서 등 당대 우리나라 명인들이었습니다.

옛날 유성기 음반의 명창들은 훌륭한 소리를 들려주었습니다.

예술적 가치

콜롬비아사의 음반은 1907년에 발매되었고, 빅타 레코드의 음반은 1908년에 발매되었습니다. 당시 기술력으로는 한쪽면만 기록된 레코드였습니다.아직 일제강점기 전인 대한제국시절에 발매된 음반이라 강점기 때 보단 정치적 제약이 덜했습니다. 초창기라는 상징성 외에도 당시에 녹음을 진행한 명인, 명창들의 훌륭한 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으며 현재로써는 전통음악 자료의 가장 오래된 음반으로 매우 중요한 음반입니다.

 

이후 일본은 자체적으로 음반을 제조할 수 있는 기술력이 생기기 시작하여 우리나라의 음반발매는 일본 음반사에 의해 발매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고유의 색깔을 간직하는 음반보단 일본의 풍경이나 놀이를 담는 노래들이나 계몽운동 같은 영향을 받은 노래들이 섞이기 시작했습니다.

 

대한제국시절에 발매한 음반은 이런부분에서 한국의 전통을 잘 담고 있는 음반들이라 우리에겐 정말 귀한 자료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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