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얼음판 위의 재주 - 줄타기
우리나라의 줄타기는 살얼음판 위를 걷는 듯 한 곡예라 하여 ‘어름’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또한 그 곡예를 펼치는 줄타기 꾼을 ‘어름산이’라고도 합니다. 매우 아슬아슬한 동작과 기예와 잘 어울리는 명칭입니다. 영화 ‘왕의 남자’에서 잘 알려진 우리나라의 줄타기는 단순히 곡예만 펼치는 것이 아닌 여러 가지 재담을 섞어가며 웃음과 해학 그리고 감동까지 선사합니다.
단순한 기예가 아닌 다방면의 즐거움
해외에서 연행되는 줄타기는 보통 곡예 중심적이며 시각적인 측면의 비중이 높은 형태라고 하면, 우리나라의 줄타기는 곡예와 더불어 춤과 노래, 재담을 섞어가며 하는 복합적 요소를 갖춘 형태의 공연입니다. 줄 위에 서는 줄꾼 혼자 공연을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줄 밑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삼현육각의 연주자들과, 줄꾼의 재담을 같이 받아주는 한 명의 어릿광대와 함께 공연이 이루어집니다. 특히 줄 밑에서 ‘매호씨’라 불리는 어릿광대와 재담을 주고받는 것이 우리나라 줄타기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화 왕의 남자에서 줄을 타는 ‘장생’과 어릿광대 ‘공길’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되는 부분입니다. 줄타기를 할 때 재담이 빠진다고 하면 마치 음식을 만들 때 간을 하지 않은 요리가 되어버리는 것과 같다고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줄타기에서 재담이 중요한 이유는 어름산이가 줄을 타기 전 자신이 펼칠 곡예에 대하여 설명을 한 후 재주를 선보이게 되는데, 이 때 줄 밑에 있는 매호씨와 함께 줄타기 재주에 대한 재담을 주고받으며 관객들과 상호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이로서 줄타기 교예를 극적으로 확대하는 효과를 주게 됩니다.
줄타기의 종류
우리나라의 줄타기는 크게 두 가지의 종류로 나뉩니다. 이를 구분 짓는 것은 줄타기를 관람하는 관객의 신분층에 의해 나뉘게 되었습니다. 궁중에서 연행되던 ‘광대줄타기’와, 민간 마을에서 행해졌던 ‘어름줄타기’가 있습니다. 광대줄타기는 주로 궁중의 중요 행사가 있거나, 명절 또는 외국의 사신을 영접하기 위한 행사를 할 때 연행되어왔습니다. 이외에도 양반층의 수요에 의해 잔치가 있는 날 불려 가 공연하기도 하였습니다. 광대줄타기는 주로 궁중이나 관아 양반들의 부잣집과 같은 곳에서 행해졌기 때문에 장소 또한 궁궐, 울타리가 있는 마당 같은 곳에서 줄을 치고 벌였습니다. 그리고 그 기예 또한 매우 화려하고 정교한 것이 특징입니다. 광대줄타기는 4~5시간에 걸쳐 놀이를 하였으며 주로 낮 시간대에 이루어졌습니다.
이와 반대로 어름줄타기는 평민층을 대상으로 하였고 여러 민간 마을을 떠돌아다니며 숙식이 제공되는 마을이 있으면 보수는 관여하지 않고 놀이를 펼쳤습니다. 때문에 어름줄타기는 ‘뜬광대 줄타기’라고도 불립니다. 어름줄타기는 남사당패와 함께 다녔었는데 이들의 공연은 총 여섯 가지였으며 풍물, 버나, 살판, 줄타기, 탈춤, 꼭두각시놀음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어름줄타기는 주로 민가의 마당인 탁 트인 공간에서 줄을 치고 놀이하였습니다. 그리고 주로 밤에 공연을 시작하였는데 밤을 새우며 했기 때문에 횃불을 밝히고 하였습니다. 남사당놀이 중 하나의 공연으로 했기 때문에 어름줄타기의 소요시간은 보통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 이루어졌습니다. 광대줄타기에 비해 기예나 곡예는 소박하지만 재담과 극적 요소가 가미된 부분이 많습니다.
줄타기의 재주
줄타기 재주는 무려 40여 가지나 되는 동작들이 있습니다. 쌍옹잽이, 앞쌍옹잽이, 뒷쌍옹잽이, 코차기, 책상다리, 드러눕기, 허공 살판 등 그 이름들도 다양합니다. 고려시대부터 기록으로 남아있는 줄타기는 현재에 전승되고 있지 않지만 두 줄로 하는 줄타기의 형태도 있었습니다. 두 줄타기를 할 때 외줄타기에서는 볼 수 없는 재주 중에 하나인 물구나무서기 재주가 자주 등장하는데 고난도의 곡예로 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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