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는 ‘귀족’문화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왕실에서 어떤 음악들이 유행했고 귀족들은 어떤 음악을 향유했는지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고려는 크게 두 시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무신의 난을 기점으로 앞의 시대와 원나라 침략과 간섭이 있던 시대입니다. 음악의 양상이 두 시대를 거치며 달라집니다.
고려의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며 정국안정을 취할 때까진 음악을 정비할 여력이 없었지만 광종 때 이르러 음악과 문화가 서서히 정비되기 시작했습니다. 불교는 고려시대의 국가의 종교가 되었고 나라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는 불교행사가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불교행사는 ‘팔관회’인데 종교를 넘어 국가적인 행사로도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 당시 고려의 궁중에는 신라에서 전해내려온 향악, 중국에서 전해내려온 당악이 있었습니다. 고려 예종 때는 송나라의 음악인 아악이 들어옴으로 이에 따른 새로운 의복이나 악기, 옷, 도구들이 함께 들어왔습니다. 이에 따라 국가의식이나 행사가 대대적으로 정비되었고 더욱 더 발전된 형태로 체계가 정비되었습니다.
기존에 사용되었던 향악과 당악보다 아악이 중심이 되었는데 이 영향은 조선에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서민들이 즐겼던 음악은 ‘청산별곡, 가시리, 만전춘 같은 향악입니다. 고려가요로도 대변되는 이 노래들은 신분의 차이가 있었지만 성별의 차이가 없던 고려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사료가 됩니다. 남녀의 사랑이나 서민의 솔직한 삶의 표현들이 그대로 노래로 드러나는 노래들입니다. 고려시대가 남녀가 평등했다는 사실을 향악을 통해 알 수 있을 정도로 음악 외에도 당시의 사회상을 향악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향악은 서민에겐 크게 인기가 있었지만 왕실과 귀족 사이에서는 그리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무신이 집권하고 나라가 뒤숭숭했을 때 원나라가 처들어오면서 고려는 시련을 겪습니다. 우리 백성과 함께 끈질기게 저항했던 우리 선조들은 무려 40년이라는 기간동안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원나라에 맞서서 용감하게 싸웠습니다. 그러나 그 여파로 수많은 유적과 사적들이 불타 없어졌고 고려초기부터 이어져 내려온 수많은 문화적 전통이 흐릿해져갔습니다.
그 와중에 음악도 여러가지로 변화가 일어납니다. 향악은 고려 충렬왕 때 왕실에 전파되어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시대에는 전혀 인정하지 않았던 음악이 전쟁을 통해 민간의 문화가 그대로 왕실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왕실의 음악이 중국의 음악과 우리 토속음악이 공존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됩니다.(물론 향악이 공식적으로 의례에 쓰이게 된 것은 조선시대의 일입니다. )그러나 원나라(몽골)의 침략은 고려의 전통의례를 심하게 훼손하였습니다. 악기들도 많이 소실되거나 부서지고 궁중에서 음악을 관장한 사람들이 전쟁으로 죽거나 흩어지며 예전만큼 활성화 되진 못했습니다. 전쟁을 거치면서 아악 역시 제대로 전파가 되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려의 궁중음악의 전통과 형태는 조선의 궁중음악에 영향을 주었고 향후 우리가 알고 있는 정악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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