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행차를 합니다. 이 때 광경을 상상해보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한 나라를 다스리는 최고 권력자 그 이상으로 왕의 위엄과 힘을 상징 할 것입니다. 왕이 행차하거나 궁중 의례를 행할 때의 음악이 경쾌한 리듬이거나 소박한 가락을 지닐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왕의 행차에 맞는 음악이 따로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음악이 서민들이 즐기는 음악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서민들이 즐기는 음악이 또 다릅니다. 그런데 궁중에서 쓰이는 음악의 이름도 다양합니다. 정악, 아악, 당악 으로 불리는 데 이번 포스팅에선 아악과 당악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아악
세계 모든 나라는 역사적으로 인접나라와 경쟁과 교류를 통해 발전합니다. (철저하게 고립되지 않는다면 인접나라의 영향은 필연적입니다.) 우리나라도 인접한 나라와 경쟁이나 교류를 통해 발전을 거듭해왔습니다. 북방 민족들과는 화친보단 대립이 많았으나 대대적으로 중국과는 시대별로 많은 교류가 있었습니다. 다양한 문화들 중 중국에서 들여온 궁중음악을 ‘아악’이라 합니다. 그런데 아악이라는 말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두 가지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용도로 아악이라는 말을 사용하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악은 고려시대 (예종)에 송나라로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왔습니다. 중세사회가 펼쳐진 후 왕실 의례에서 사용되는 음악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중국의 음악을 수용하며 왕실의 제례악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이후에는 용도가 점점 확대되어 왕실 내부의 크고 작은 여러 가지 행사에 사용되는 음악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이 때 송나라에서 도입한 원래의 음악을 ‘대성아악’이라 불립니다.
그러나 계속되는 사회적 혼란과 원나라의 침공으로 왕실 의례도 간소화 되거나 왜곡되어 점점 원래 아악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원형이 변해갔습니다.
조선이 건국되고 태조~태종을 지나며 국가의 기틀이 잡힌 뒤 세종 때에 이르러 여러 가지 문물이 재정비되기 시작합니다. 왕실의 음악도 여기에 포함되었고 축소되거나 변형되었던 아악을 복원하였습니다. 세종 때에는 복원에만 그치지 않고 정확한 기보와 기록을 남기며 확연하게 틀을 유지하게 하였습니다. 이런 노력을 바탕으로 세종때는 아악은 사회적으로 널리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흔히 아악을 말한다면 세종 때에 정비된 아악을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현재는 명확하게 남은 아악은 ‘문묘제례악’만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 아악을 연주한다고 한다면 대부분 ‘문묘제례악’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악은 궁중음악을 통칭하기도 합니다. 명확하게 이야기 한다면 송나라에서 들여온 옛날의 ‘대성아악’이지만 궁중에서 쓰는 제례악, 정악, 연례악을 함께 포함하여 아악으로 이야기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악을 지칭할 때 우리는 무엇을 이야기 하는지 명확하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송나라에서 들여온 음악인지, 궁중음악을 통칭하는지, ‘문묘제례악’을 이야기 하는 것인지 구분해야 합니다.^^
당악
아악 전에 전해진 중국의 음악을 ‘당악’이라 합니다. 이름에서 볼 수 있듯 당악은 당나라에서 유래된 음악입니다. 당나라의 역사는 우리나라의 고대시대에 해당되기 때문에 상당히 오래된 음악입니다. 그러나 현재 전해지지 않은 노래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기록을 통해 당악을 찾아 볼 수 있을 뿐 음악의 실체나 기보는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그 당시에 당악이 있었음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당나라의 음악이 당악이긴 하나 이것은 송나라에 뿌리 깊게 전해진 민속음악도 당악으로 이야기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송나라의 음악도 당악이 될 수 있으며 당나라의 음악도 당악이 됩니다. 명확하게 정의 내린다면 “고대시대 (통일신라)에 당나라부터 송나라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에 전해진 음악”이 ‘당악’입니다.
고대시대의 당악은 불교음악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에선 불교가 크게 융성하며 왕실에서 직접 신경쓰는 큰 행사를 개최합니다. 대표적인 불교행사인 ‘팔관회’에 그 기록들이 상당히 많이 남아있습니다. 고려사에 기록된 곡들만 43곡이나 되니 그 당시 불교행사의 규모나 화려함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악과 함께 당악도 왕실의 음악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당악은 연주가 잘 되었습니다. 세종 때에는 (우리나라 국악은 세종을 기점으로 완전히 달라집니다. 세종 때 정비된 체계가 현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각종 국가 의례에서 당악을 함께 연주하였고 종묘제례악으로도 채택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당악은 점점 향악(향토음악)화가 되어 원래 당악이 가지고 있었던 고유의 특성들은 소멸되었습니다.
현재는 조선후기에서 향악화 된 당악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현재는 궁중음악을 통칭하는 말로 '정악'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 편입니다. 그러나 아악, 당악, 정악은 곡이 다르고 용도가 다르기 때문에 별도로 구분하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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