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조,박(추교신, 조기준, 박춘경)에 의해 정립된 경기소리는 세가지 흐름에 의해 전해집니다. 하나는 사계축(서울역일대에서 만리동, 청파동)을 바탕으로 한 평민가객이며, 한쪽은 삼패(기생)에 의해 전해졌습니다. 여기에 한가지가 더해집니다. 1900년대로 들어가며 유성기가 보급되고 레코딩이 되며 특정지역을 벗어나 전파가 됩니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지역과 집단, 방송국이 전파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가장 유통경로가 다양하고 걸출한 명창들이 많이 활약하며 경기소리는 중흥기를 맞게 됩니다.
1.권번
구한말까지 명맥을 이어오던 기생은 대한제국설립, 광무개혁이후 활동이 거의 없어집니다. 직접적인 원인은 열강의 침탈과, 신분제의 폐지일 것입니다. 혼란스러웠던 당시 시대상황에 조선후기의 풍류를 즐기는 반상계급과 중인계층이 역사속으로 사라지게됩니다. 일제가 완전히 우리 국권을 장학하며 기생은 완전히 없어집니다.
기생들은 살길을 찾고자 조합을 결성합니다. 이 때 설립된 조합이 바로 ‘권번’입니다. 기생은 원래 기예에 능했습니다. 여기에서 손님의 접객이 사라지자 완벽한 예능인이 됩니다. 조선후기에는 일패, 삼패로 기생이 구분되었지만 일제강점기에는 그 의미가 완전히 없어졌습니다. 그리하여 권번에 속한 사람들을 ‘삼패’라고 합니다.
권번에 소속된 여인들은 가곡, 가사, 시조같은 정가와 경기잡가, 서도잡가, 같은 당대 유명한 잡가들, 그리고 지역별 민요까지 다양한 소리를 배웠습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권번에서는 악기연주와 춤까지 가르치며 우리 전통예술 교육기관이 됩니다.
권번으로 부터 재능있는 소리꾼들이 배출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유개동, 안비취, 묵계월 같은 명창들입니다.
2.가무연구회
경기소리와 판소리 명창들이 함께 시민들을 위한 공연을 했습니다. 희대라는 무대에서 펼쳐진 공연은 희대의 명창인 박춘재, 이정화, 문영수, 최경식 등이 있습니다. 1900년대 예술인들도 살길을 찾아야 했기 때문에 조직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가무연구회’라는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가무연구회는 소리꾼 외에도 기악, 무용, 연희 등 장르별로 활동한 여러 예능인들이 가입하고 활동했습니다.
이 때 ‘희대’는 당대 최고 수준의 예능보유자가 자신의 재주를 펼치는 무대였습니다. 오늘날 자주 쓰는 ‘희대의 명곡’여기서 유래된 말로 당대에 인정받는 곡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3.경성방송국
1927년 우리나라 최초의 방송국이 설립됩니다. ‘경성방송국’이 개국되고 라디오라는 매체로 우리 소리가 전파되기 시작합니다. 권번, 가무연구회소속의 예능인은 일제강점기 시대에 이 방송활동을 많이 합니다. 유성기의 보급, 레코딩이 이 활동에 날개를 달아주었습니다. 방송활동 덕분에 우리는 지금 이 시대의 어떤 사람이 주로 활발하게 활동하였고 시대적으로 유명했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이 당시 유성기 음반은 국악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로 남아있습니다. 당대 쟁쟁했던 소리꾼들의 육성을 지금도 들을 수 있어 국악보존과 계승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방송활동은 1930년대에 이르러 최고치에 달해 수많은 명창들이 활약하였습니다. 1940년대에는 방송 출연이 확연히 줄어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의 중일전쟁, 태평양전쟁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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