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를 보면 느껴지는 안정감
길을 걷다 힘들 때 깨끗한 벤치를 발견하면 정말 기분이 좋아집니다. 공공시설이 미리 준비되어 필요한 누구에게나 도움이 된다는 것은 세금이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차로가 있고 인도가 그 양 옆을 차지하고 있는데 거기에 간간이 벤치가 있다면 시민들은 안정감을 느끼겠지요. 꼭 그 벤치에 앉지 않아도 사람들은 도시가 제 기능을 하는 시스템으로 잘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할 겁니다.
팔걸이는 물론 등받이도 없는 것부터 아주 넓은 평상처럼 생긴 것, 등받이, 팔걸이는 물론 천정까지 씌운 벤치까지 다양한 모양이 있습니다. 어떤 모양, 어떤 재질로 만들어졌건 내가 힘들 때 딱 그 자리에 있는 벤치가 가장 고맙지요. 요즘은 버스 정류장에 스마트 벤치가 핫하죠. 겨울에 의자가 따뜻하게 데워지고, 휴대폰 무선 충전 기능에 공기 청정기가 설치된 벤치도 있습니다. 좀 과하다는 느낌도 있습니다.
단순하고 길게 생긴 벤치. 벤치라는 말은 어디에서 시작한 걸까요?
벤치(bench)의 어원
벤치(bench)는 등받이 없는 긴 의자 베네(bene)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찾아보니 카* 베네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베네(bene)는 게르만어 bankon에서 왔습니다. 뱅크(bank)는 물가에 있는 계단처럼 생긴 천연 경사면을 가리킵니다. 바닷속 얕은 평지를 대륙붕이라 하고 그 안에 살짝 솟은 부분을 뱅크라고 하는데 이것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외에도 1,300년 경 벤치는 판사들이 앉는 의자를 가리켰습니다. 이후 그 의미가 더 확산되어 판사들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1690년대 bench-warrant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판사가 발부한 영장입니다.
그리고 벤치는 스포츠에서도 사용됩니다. 주로 야구, 미식축구에서 쓰이는데 대기 선수를 가리킵니다.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과의 교체를 대비해서 벤치 의자에 앉아 있는 선수들이 해당됩니다. 여기서 더 나아간 말이 벤치워머(bench warmer)입니다. 벤치를 데우는 사람. 그냥 벤치의 의미로 쓰이는 대기 선수라는 뜻입니다. 조금 야박한 느낌의 말이지요? 주전으로 뛰지도 못하는데 벤치 데우는 사람이라니. 서양인 특유의 냉정함이 느껴집니다.
뱅크(bank)가 벤치(bench)와 관련있다
뱅크(bank)는 이탈리아어에 어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어 반코(banco)입니다. 반코는 돌의자 즉 벤치(bench) 또는 크고 긴 탁자를 가리킵니다. 이탈리아 수도원에서 상인과 금, 증서, 교환하는 일을 포도밭에 놓인 의자(bench)에서 하였다고 합니다. 이 의자가 반코(banco)입니다. 그리고 중세 지중해 연안 국제시장에서 환전 업무를 수행할 때 사용하던 탁자를 반코(banco)라고 하였습니다. 이렇듯 은행 업무를 보던 의자(bench), 탁자를 지칭하던 반코(banco)가 오늘날 뱅크로 불리는 것입니다.
도시에서 벤치의 의미
위에서 보듯이 벤치는 의외로 여러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물로서의 벤치는 도시에서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까요? 벤치는 잠시 쉬어가는 자리입니다. 보통 2명 이상 앉을 수 있는 긴 의자이지요. 모르는 사람들이 같은 벤치에 앉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혼자 또는 가족, 친구 끼리. 이러한 벤치가 없다면 우리는 카페를 이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자리를 이용하는 비용을 치러야만 합니다. 그야말로 사적 공간을 이용해야만 만남이 이루어지는 셈이 됩니다.
구청, 시청이 이런 부분에 많은 고민을 하고 예산을 배정해야 하겠습니다. 단절 사회가 되어 가는데, 거리에 설치된 벤치가 끊어진 사회적 연결망을 이을 것입니다. 공원이 많이 조성되고 그 안에 벤치가 있으면 좋겠지만 훨씬 많은 돈이 들어갈 것입니다. 공원이 없더라도 아담한 벤치가 거리에 많이 놓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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