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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선사시대의 사회와 문화예술 2. – 학생들을 위한 한국사 이야기

더욱 발전하는 인간의 생활

사람이 정착을 하기 시작하면서 생산되는 물건을 쌓아두게 됩니다. 이렇게 생활이 바뀌면서 더 이상 좋은 지역을 차지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벌어지고 사유재산의 개념이 생깁니다.

 

그런데 돌 속에 있는 광물의 흔적을 발견하면서 서서히 이전보다 강한 물건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청동기가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도구는 이제 생존과 생활을 넘어 장신구, 의례를 위해 쓰이게 됩니다.

계급사회, 강력한 국가가 생겨나기 시작하는 청동기와 철기

 

청동기의 발견

먹을 것을 안정적으로 얻기 시작하자 서서히 먹는 것을 저장하는 빈도가 높아집니다. 그러다 보니 개인의 재산이 달라지며 사회는 서서히 불평등 사회로 바뀌게 됩니다. 강력한 족장이 등장하고 인접부족간의 경쟁이나 세력통합이 일어나며 정복전쟁도 시작되고 서서히 국가가 만들어집니다.

청동기는 주로 실생활의 물품은 아니며 의기로 사용되었습니다. 

청동기의 유물은?

청동기 시대에 유물은 비파형동검, 세형동검, 고인돌이 될 것입니다. 이 유물은 고조선을 상징하는 유물이기도 합니다. 세력화 된 강한 군장(족장)은 여러 사람을 부릴 수 있었고 족장의 무덤인 고인돌을 통해 그들이 가진 권위와 힘을 알 수 있습니다. 커다란 돌을 옮기는 것, 세우는 과정, 그리고 고인돌의 개수가 많지 않음을 통해 고인돌과 그 문화가 어떤지 알 수 있습니다.

한국식동검 - 세형동검

 

저습지를 중심으로 일부 지역에선 벼농사가 시작되었고(극히 일부) 밭농사 중심으로 경제가 재편됩니다. 그리고 가축을 사육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로 말미암아 수렵의 비중이 낮아졌습니다.

 

철기의 발견

청동기는 실생활에 유용하게 쓰지 못한 도구였습니다. 강력한 철기문화로 넘어오면서 철제농기구와 무기가 개발되었습니다. 철기시대는 국가가 만들어지고 국가가 아닌 부족 단위로는 더 이상 살아가기 어려웠습니다. (침략, 정복전쟁의 여파)

 

청동기-철기를 거치며 계급체계가 확고해지고 남성의 역할이 증대됩니다. 농사일, 사냥, 그리고 전쟁 남성이 중심이 되는 일입니다. 그레서 일부 사회에선 남성을 중심으로 하는 가부장적 가족의 모습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또한 청동기, 철기철기를 다룰 수 있는 전문 기술이 중요해집니다. 이 때부터 금속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장인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농업생산력 증대에 기여한 철제농기구

먹고 사는 것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철제 농기구는 밭을 갈거나 농사를 짓는데 효율이 매우 좋았습니다. 농작물 생산이 어마어마하게 증가 하면서 이전에 비해 안정적으로 식량을 얻게 됩니다. 그 결과 철기시대부터는 인구가 증가합니다.

 

여기서 잠깐!

청동기 철기 시대로 들어와도 석기로 만든 도구들은 매우 중요한 도구입니다. 간석기로 만든 도구들은 철기시대에도 사용되었고 사실 지금도 석기시대의 물건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 일상에서 쓰는 석기로 만든 물건은 매우 많습니다. 새로운 문명에 접어들며 새로운 물건이 추가된 것이지 기존 물건이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청동기, 철기의 문화예술

 

유물을 통해 사회상이 드러나는 것처럼 예술을 통해 사람들의 의식과 생각이 드러납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풍요와 평안이었습니다. 그리고 농사와 연관된 자연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동물과 식물, 자연을 그리며 풍요를 기원한 것과 함께 동심원, 십자형, 삼각형처럼 추상적인 도형을 그립니다. 이 그림들은 농사에 영향을 주는 태양, 바람, 비 등을 표현한 것으로 수렵과 채집에 국한된 구석기 시대에 비해 농경이 많이 정착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 둘은 종교적 의식이 결합된 것이고, 때로는 군장에 의해 정치적인 요구를 반영하기도 하였습니다.

 

 

어디에서 살았을까?

정착이 중요한 화두가 되면서 정착의 조건은 농사를 짓기 좋은 땅, 수렵을 병행할 수 있는 장소가 적합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산과 강, 산과 바다가 같이 있는 곳에 정착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이야기 하는 배산임수(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봄)의 구릉지에 정착합니다. 청동기시대에는 건축기술이 좋지 않았음으로 신석기 시대처럼 움집에 거주하였습니다. 철기시대에는 반움집의 흔적, ()자형, ()자형 집터가 발굴되며 점점 지상으로 나오는 형태인 반움집, 귀틀집에서 생활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수학여행은 무덤으로 간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습니다. 중요한 왕릉을 탐방하기 위해서 가거나 고인돌 같은 유적를 자주 다니다보니 나오는 말입니다. 그만큼 선사시대 역사에선 무덤은 매우 중요합니다. 무덤의 배치나 물건은 사람들의 의식과 생각, 종교적 사고, 예술적 가치를 보여주며 무덤의 형태를 보고 문화의 세력권을 볼 수 있습니다.

청동기 시대부터 권력을 가졌던 사람은 죽어서 묻힐 때도 많은 사람이 동원됩니다. 가장 큰 무덤은 돌무지 무덤입니다. 부장품을 함께 넣는 무덤이며 많은 돌을 쌓아 언덕을 만드는 무덤입니다. 돌이 어마어마하게 많으므로 도굴이 불가능하능한 무덤입니다. 규모가 소박한 무덤으로는 평평한 돌들을 주위에 두르는 돌널무덤, 독을 이용했던 독무덤, 이외에도 널무덤, 돌널무덤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