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의 가왕 송흥록 - 1편
판소리를 알아가다 보면 판소리의 역사에 대하여 질문하게 되고 또 그 속에서 옛 명창들의 지나온 발자취를 따라가 보게 됩니다. 오늘은 판소리 명창들 중에서도 일명 가왕이라고 불리는 송흥록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송흥록의 출생
송흥록(1801?~1864?) 명창은 남원의 운봉읍 비전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전기 8명창에 속하는 인물로 19세기 전반에 활동하였습니다. 그는 권삼득의 수행 고수였던 아버지 송첨지의 영향을 받아 유년기 시절부터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하였는데 그 재능이 남달라 어린 시절부터 애명창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뛰어났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가족 중에서도 동생인 송광록과, 매부 김성옥이 당대 판소리 명창으로 활동할 만큼 예인집안의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진양조의 창시
송흥록 명창은 그 당시 판소리 장단 없었던 진양조 장단을 창시하며 판소리사에 최대의 업적을 남겼습니다. 진양조를 창시하게 된 두 가지의 일화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1. 맹렬과의 사랑
어느 날 대구 감영 선화당에서 송흥록이 소리를 하였는데 같이 소리를 듣고 있던 좌중들과 달리 맹렬이란 기생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고 합니다. 송흥록은 맹렬에게 이유를 묻자 그녀에게서 돌아 온 대답은 “소리를 잘 하긴 하나 아직 미진한 부분이 많다.”며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녀의 대답에 자극을 받은 송흥록은 소리공부에 전념하였고 다시 맹렬에게 소리를 들려주자 그 소리에 매료되어 감탄하였다고 합니다. 이 일을 계기로 둘은 부부의 연을 맺게 됩니다. 어느 날 맹렬은 송흥록의 춘향가의 귀곡성 대목을 듣고 있다 귀곡성이 부족한 듯하다며 조언하자 피나는 연습 끝에 귀곡성을 완성하여 그녀를 감동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판소리에 대한 뜻과 애정이 많은 부부로 살아가게 되던 어느 날 송흥록은 진주 관찰사에 연희자로 참석하게 됩니다. 몇 일내로 돌아오는 일정이었지만 수 일이 지나도 송흥록이 돌아오지 않자 맹렬은 송흥록이 그곳에서 다른 기생에게 빠져 돌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짐을 싸 떠나버립니다. 그리곤 진주 병사인 이경하의 수청기생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진주로 곧장 맹렬을 데리러 간 송흥록에게 이경하는 수궁가 소리를 하여 자신을 울리고 웃기면 상금을 주고 그렇지 못하면 목숨을 내놓으라는 제안을 합니다. 그가 수궁가를 선택한 이유는 일명 ‘바짝 마른 소리’라 하여 웃고 울릴만한 극적인 요소가 없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송흥록은 수궁가의 익살스런 재담과 계면조의 슬픈 대목을 부르며 이경하를 울고 웃게 했으며 맹렬도 다시 데려올 수 있게 됩니다.
다시 그렇게 부부로 살아가던 어느 날 맹렬은 송흥록과 부부싸움이 잦아지고 결국 큰 싸움 끝에 짐을 싸서 나가게 됩니다. 이를 비통하게 생각한 송흥록은 맹렬을 향한 그리움에 그 자리에서 노래를 지어 부르게 되었는데, 이때 매우 느리고 진중한 진양조장단에 애통하고 비장한 심정을 담아 목 놓아 불렀다고 합니다. 그가 불렀던 가사의 내용은 ‘맹렬아 맹렬아 맹렬아 맹렬아 네 이년 잘 가거라 날 버리고 네가 가면 내가 너를 잊을 소냐’ 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송흥록의 애절한 소리를 들은 맹렬은 그의 소리에서 진심을 느끼고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계기로 진양조장단이 창시되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번외로 송흥록이 맹렬을 붙잡으며 불렀던 가사는 근래의 흥타령에서도 쓰이는 유명한 구절이 되었습니다. 흥타령의 가사 중 - 맹렬아 맹렬아 맹렬아 맹렬아 맹렬아 맹렬아 잘 가거라 날 두고 가려거든 정마저 가려무나 몸은 가고 정만 남아 쓸쓸한 빈 방 안에 외로이도 홀로 누워 밤은 적 적 깊었는데 오늘도 뜬 눈으로 이 밤을 새우네.
2. 김성옥의 진양조장단을 완성하다.
송흥록의 매부였던 김성옥 명창은 어느 날 병을 얻어 앉은뱅이가 되었습니다. 집밖 출입이 힘들어지자 그는 병상에 누워 매일 같이 소리연구를 하게 됩니다. 김성옥은 소리연구 끝에 진양조장단을 개발하게 됩니다. 마침 문병을 갔던 송흥록이 그와 함께 소리를 주고받으며 일상을 이야기하던 중에 김성옥이 개발한 진양조장단을 듣게 되었고, 이전에 없었던 그의 소리에 송흥록은 매우 감탄하게 됩니다. 송흥록에게 인정을 받자 김성옥은 진양조장단을 좀 더 다져서 후세에 널리 퍼트려달라는 부탁을 하게 됩니다. 이로써 송흥록은 김성옥의 개발과 송흥록의 완성으로 진양조장단이 창시되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오늘은 송흥록 명창의 업적중 하나인 진양조 창시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다루어 보았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또 다른 송흥록 명창의 일생과 업적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문화예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당패의 소리와 공연 (0) | 2021.04.20 |
---|---|
공연보기 좋은 계절에 소개하는 온라인 공연정보 (0) | 2021.04.18 |
전통문화의 보존 – 무형문화재 제도 (0) | 2021.04.15 |
무속신화로 바라본 성주풀이 (0) | 2021.04.14 |
격동의 시대를 지낸 소리꾼들 (0) | 2021.04.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