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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민요가 점점 바뀐다고? ‘통속민요의 변화’

옛날에는 경기민요, 서도민요가 엄격하게 구분되진 않았습니다. 지금의 우리나라는 남북으로 나뉘어 있어서 황해도가 생소한 느낌이지만 예전엔 경기도와 황해도는 매우 가까운 위치에 있었으며 교류도 활발했기 때문에 두 지역의 노래에 크게 다른 점은 없었습니다.

 

근대시절엔 여러 경기, 서도 소리꾼들이 경기, 서도의 민요들을 공유하며 불렀다고 전해집니다. 이런 사실은 그 당시 발간 된 언론과 레코딩 된 유성기 음반에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몇몇 노래들을 통해 지금 민요가 어떻게 바뀌고 다른 모습이 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민요가 바뀌는 사례를 알아보겠습니다.



사설난봉가

사설이라는 말이 붙은 이유는 긴 가사 덕분일 것입니다. 해학적이고 익살적인 가사 내용이 돋보이는 이 민요는 통속민요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볼 수 있는 중요한 노래입니다. ‘경복궁타령과 비교 했을 때 공통된 선율이 많고, 경기민요의 대표적 선법이라 할 수 있는 반경토리로 구성되어 있어 서도민요적인 특징보단 경기민요적인 특징이 더 많이 묻어나옵니다.

 

사설난봉가의 예전 유성기 음반 버전(박춘재, 문영수)을 들어보면 일부는 경복궁타령과 흡사합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서도 특유의 난봉가적인 영향을 많이 받으며 현재의 독창적인 음악으로 변화했다고 추정됩니다. 그러나 그 변화가 이루어진 것은 최근의 일로 생각이 됩니다. 불과 70년대만 해도 경복궁타령의 영향이 많이 남아있었고 반경토리로 구성되었기 때문입니다. 20세기 후반 서도출신의 많은 소리꾼들의 독창성과 서도민요의 영향이 결합되어 서도민요화 되었습니다.

 

 

한강수타령

지금은 대표적인 경기민요로 뽑히는 노래입니다. (제목부터가... ) 그런데 근대시대에 이것 또한 지금과 다르게 부른 기록들이 있습니다. 먼저 구성되는 토리에서 차이가 있는데요. 서도소리꾼들은 반수심가토리로 불렀습니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났을까요? 우리는 경기지역과 서도지역의 교류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한강수타령이 너무 유명했기 때문에 서도 소리꾼들도 자주 부르는 레퍼토리였습니다. 그러나 소리꾼 개인의 성향이나 지역적 기반이 섞여 서도 소리화 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서도 소리처럼 부른 한강수 타령은 이후에 서도 간지타령을 으로 파생되었지만 지금은 전승되지 않은 노래가 되었습니다.

 

 

개성난봉가.

국악에 조예가 깊은 분들은 박연폭포라는 노래를 기억하실 겁니다. 어떻게보면 개성난봉가라는 이름보다 박연폭포가 더욱 우리에게 잘 남아 있습니다. 경기지역이긴 하나 지리적으로 황해도와 가깝고, 교류도 활발하여 경기민요라기 보단 서도민요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경기지역에서 유행했기 때문에 서도에서 자주 쓰는 수심가 토리, 반수심가토리가 반경토리와 섞인 형태로 불리웠습니다. 이렇게 토리들이 섞인 이유는 소리꾼이 가진 기량과 개성에 따른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기보가 명확한 서양음악과 달리 우리 소리는 구전전승의 영향이 많아 소리꾼의 역량이 중요했습니다. 우리민요의 변화는 소리꾼들이 가진 고유의 특성과 개성이 만들어낸 것으로 창의적인 시도가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어찌보면 요즘 국악인들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시도 하는 것도 옛 우리 선조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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