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의 음악사 4편
5. 보존 · 재생기
판소리 음악사에서 보존 재생기의 시기는 1960년대를 기점으로 하여 현재까지를 이릅니다. 1960년대를 기점으로 나뉘는 가장 큰 이유는 1962년 무형문화재 제도의 도입으로 인한 변곡점을 맞이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판소리가 무형문화재 5호로 지정된 것에 있어 다양한 시각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전통문화와 예술을 보존하고 재생하는 힘을 갖추기까지 상당한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합니다. 일제강점기로 인하여 민족 문화 말살 정책을 펼쳤던 시대상과 맞물려 전통예술에 대한 정체성이 모호해질 때 즈음 무형문화재 제도의 도입은 판소리의 근본적 예술성을 되찾고 자립할 수 있는 자생력을 갖출 수 있게 하였습니다.
최초의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소리는 춘향가이며 이에 해당한 명창들은 김연수, 박록주, 김소희, 김여란, 정광수, 박초월 명창들이 보유자로 등재되었습니다. 이후 보유자로 지정된 명창들 가운데 주목할 만한 인물은 바로 박동진 명창이었습니다. 그는 1973년 적벽가로 문화재 등극을 하였습니다. 박동진 명창은 20세기 전반 20~30분 토막소리로 행해지던 판소리의 공연양식을 다시 일인 창의 (적게는 3시간 많게는 7시간에 달하는) 완창형식으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그의 완창공연은 그 당시 큰 이슈가 되며 판소리 5마당을 해년에 걸쳐 완창 하였고, 이로써 판소리 부흥 운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무형문화재 제도는 차즘 판소리 계승을 위하여 유파에 가치를 두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기존의 토막소리인 더늠 위주의 소리로 판가름하여 지정하였던 관례를 벗어나, 한 바탕의 소리인 바디 중심의 소리에 무게를 두어 문화재를 지정하였습니다. 이는 스승과 제자의 전승양상을 바탕으로 한 계통 있는 소리가 가치 있고 보존력 있는 소리로 인정되는 시대적 흐름에 의해 반영된 결과입니다. 때문에 판소리에서 유파가 중요하게 되었고 바디를 보유한 유파의 스승으로부터 계통 있는 전수를 받은 후계자인지가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판소리는 무형문화재 제도의 도입으로 인해 전승이 단절되는 상황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유파에 대한 지나친 잣대로 인하여 판소리의 본질 중 하나인 현장성과 역동성을 잃게 되었고 그것은 마치 박물관의 유물 같은 소리로 정형화되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무형문화재가 보존과 전승이라는 이점과 박제된 사진소리라는 문제점을 동시에 안고 가야 할 양날의 검이 된 셈입니다.
한편 판소리의 보존, 재생기 중 중요했던 흐름 하나는 전승되지 않던 12바탕의 소리 복원과 창작판소리의 등장이었습니다. 5바탕만 전해오던 판소리를 박동진 명창이 선두 하여 여러 명창들이 옹고집타령, 배비장전, 숙영낭자전, 변강쇠타령 등을 복원하게 됩니다. 물론 19세기 전승되던 12 바탕의 소리와 비교할 수 있는 녹취와 음반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똑같은 형태로 구현하였다고 볼 순 없지만 창본을 바탕으로 작창 하여 복원하였고 공연 기록으로 남겼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행보였습니다.
창작판소리의 등장은 박동진 명창의 1969년 ‘판소리 예수전’과 1973년 ‘충무공 이순신전’이 시초가 되어 1985년 임진택의 ‘똥바다’라는 완성도 높은 작품이 탄생하게 됩니다. 그 이후로 여러 소리꾼들이 창작판소리를 발표하였고, 2000년대에 들어서 창작판소리의 상당한 발전을 이루며 활성화되기 시작합니다. 창작판소리를 선보이며 활동하던 다양한 단체들은 인사동 거리판이나 야외 길거리에서 직접 관객과 소통하며 현장성 있는 소리를 공연하였고, 판소리에 대한 선입견을 깨기 위한 시도를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다양한 시도와 실험적 창작 활동들은 판소리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와 함께 판소리 본질의 예술성과 비교되는 작품의 한계점으로 비평을 받기도 합니다. 현 시대의 흐름에 맞추며, 전통을 기반 한 예술성을 갖춘 새로운 창작물이 탄생하기까지는 무한한 창작과 다듬는 과정이 필요할 것입니다. 본연의 판소리가 그 시대의 새로운 음악에서 지금의 판소리로 정착하게 된 일련의 과정만큼, 이 시대의 판소리 또한 수많은 실험과 창작활동들이 수반되어 유기적으로 살아있는 예술로 남아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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