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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감상

(책 감상) 로마인 이야기 2-한니발 전쟁(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한길사)

두 영웅의 이야기

로마인 이야기 2는 한니발 전쟁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한니발의 발자취를 매우 중요하게 다룹니다. 실제 그런 측면이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한니발의 맞상대 스키피오 장군의 영웅성도 자세하게 다룹니다. 1차 포에니 전쟁부터 얽히고설킨 국가 간의 패권 다툼, 가문 사이의 복수와 재복수가 이어져 기원전 264년부터 146년까지 3차에 걸친 포에니 전쟁이 어떻게 전개되고 마무리되는지 흥미롭게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역사 소설입니다. 사실에 기반한 소설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보시기 바랍니다.

 

로마인 이야기2-한니발 전쟁 포스팅 썸네일

 

저자 시오노 나나미(塩野七生, 1937~)

 

저자 시오노 나나미(塩野七生, 1937~)

 

로마인 이야기 2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1937년 일본 도쿄 키타구에서 출생하였습니다.

독학으로 라틴어를 익혔습니다. 1964년 이탈리아로 가 약 4년간 독학으로 르네상스, 로마사를 연구하였습니다.

 

<체사레 보르자 또는 우아한 냉혹>, <바다의 도시 이야기>,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 <십자군 이야기>, <사는 방법의 연습>등을 집필하였습니다.

 

1970년 마이니치 출판문화상, 1982년 산토리 학예상, 1983년 키쿠치 칸 상, 1993년 신초 학예상, 1999년 시바 료타로 상, 2001년 이탈리아 국가공로훈장, 2007년 일본 문화공로자 선정 등 수상 이력이 있습니다.

 

작가에 대한 더 많은 정보는 지난 포스팅을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책감상) 로마인이야기 1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링크

 

줄거리

 

로마인 이야기 2-한니발 전쟁은 기원전 264년부터 기원전 146년까지 3차에 걸친 포에니 전쟁을 다룹니다. 카르타고의 전쟁 영웅 한니발과 이에 맞서 최종 승자가 된 스키피오의 활약상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전쟁 전술가 한니발의 제2차 포에니 전쟁 승리가 워낙 인상적이기 때문에 부제가 한니발 전쟁으로 붙은 것 같습니다.

 

로마인 이야기 2-한니발 전쟁 책 표지

 

지중해의 제해권을 두고 쟁탈전을 벌이던 아프리카 북부의 맹주 카르타고와 지중해 동부의 실력자 로마와의 전쟁이 포에니 전쟁입니다. 포에니는 페니키아인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카르타고가 페이키아에 기원을 두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입니다.

 

시칠리아 섬의 매시나에서 카르타고에 대한 침략을 막아달라는 요청 해 와 로마가 나선 것이 포에니 전쟁의 시발입니다. 해상전에 자신감을 갖고 있는 카르타고의 지중해 정복의 야심이 도사리고 있다는 한 증거입니다.

 

로마는 육지에서 매우 강함을 보였지만 해군력은 거의 없다시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문제 해결 능력,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급조하듯이 군함을 건조하여 진용을 겨우 갖추었지만 뜻밖에도 로마는 카르타고를 이겼습니다.

 

2차 포에니 전쟁은 1차 포에니 전쟁에 대한 복수혈전이라 하겠습니다. 어릴 때부터 로마에 대한 적개심을 가슴에 쌓아 온 한니발 장군이 이베리아반도를 출발하여 로마로 향합니다. 해상이 아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지상으로 이탈리아 반도를 침공합니다. 한겨울의 혹한을 뚫고 수많은 사상자를 내는 손실을 감수하면서 알프스를 넘어간 것입니다. 한니발의 기세는 걷잡을 수 없이 강하였고 그 지도력은 용병 부대지만 하나의 충성심으로 묶어 세울 만큼 굳건하였습니다. 여기에 이탈리아 북부 갈리아 지방의 세력까지 규합하여 전쟁 기계로 불렸던 로마를 붕괴시켜 나갔습니다. 로마의 본거지 코앞까지 밀고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꼭지를 따지는 못했습니다. 전쟁은 장기전에 들어갔고 로마도 전열을 정비하였지만 의도적인 지연 작전으로 적을 고립시키는 방법을 택하였습니다.

 

한니발은 로마와 그 동맹국 사이의 관계를 끊어내고 이탈리아 본토를 점령하려고 했지만 로마 동맹은 생각보다 끈끈하였습니다. 이것은 로마의 온건한 제국주의 정책이 낳은, 매우 결정적인 보루였던 것입니다. 결국 한니발은 본국 카르타고로부터 보급이 끊겨 거꾸로 고립 상태에 빠지고 맙니다. 그러나 한니발은 고향을 떠나 15년 이상 고립된 부하들을 잃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순전히 한니발의 지도력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 로마의 영웅이 나타납니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대장입니다. 이베리아반도와 이탈리아 북부에서 한니발에게 패한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장군의 아들입니다. 이베리아반도에서 카르타고 세력을 제압합니다. 이 전과에 힘입어 본국에 돌아와 30세에 집정관에 오릅니다. 원래는 40세가 넘어야 하지만 탁월한 연설로써 규정에 대한 예외를 이끌어 냅니다. 그 길로 이탈리아 반도에 도사린 한니발을 밖으로 끌어내기 위하여 카르타고 본토를 때립니다. 이 작전은 성공하여 한니발은 이탈리아 반도를 뒤로 하고 카르타고로 돌아갑니다. 두 영웅은 자마 대회전에 맞섭니다. 결과는 스피키오 승. 카르타고의 항복 조약을 이끌어 냅니다.

 

 

이후 한니발은 카르타고의 쇄신을 주장하며 나섰지만 뜻을 펴기도 전에 밀려나 망명 생활을 하다 쓸쓸히 자살로써 생을 마감합니다.

스키피오는 카르타고의 항복을 받아내어 아프리카누스라는 영광스러운 별칭을 얻고 프린캡스라는 최고 귀족의 자리까지 오릅니다. 그러나 정적의 모함을 받아 불명예스럽게 원로원 자리를 내놓게 됩니다. 그 후 얼마 안 되어 병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이렇게 두 영웅은 비슷한 시기에 생을 마감하였지만 3차 포에니 전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카르타고는 항복조약을 어기고 이웃 국가를 침공합니다. 이에 로마는 자제할 것을 당부하고 조건을 내걸어 그냥 넘어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카르타고는 명예를 중시하였던지 조건을 걷어차고 로마에 대한 전쟁 태세를 취합니다. 기원전 149년에 3차 포에니 전투가 발발합니다. 로마가 카르타고를 침공합니다. 그전까지 온건한 제국주의 정책을 추구하였던 로마와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카르타고를 철저하게 삭제합니다. 지구상에서 카르타고는 없어집니다. 모든 것을 파괴하고 살아남은 카르타고 주민들은 노예로 팔아버립니다.

 

이후 로마는 마케도니아를 속주로 만들고 그리스도 사실상 속주로 만듭니다. 지중해의 가장 강력한 국가로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패권을 잡고 지중해를 마레 노스트룸(우리 바다)라 칭하게 됩니다.

 

인물 소개: 한니발(Hannibal Barca, 기원전 247~ 기원전 183년 또는 기원전 181)

 

한니발(Hannibal Barca), 출처: https://www.flickr.com/의 작가 Ziad Fhema

 

한니발은 인류 역사상 가장 훌륭한 장군의 한 사람으로

꼽힙니다. 로마의 2,000년 전쟁사 가운데 가장 위협적이며 높은 평가를 받는 장군이기도 합니다.

 

한니발의 아버지가 고대 국가 카르타고의 하밀카르 바르카입니다. 한니발의 정식 이름은 한니발 바르카입니다. 하밀카르 바르카는 로마와 카르타고 사이의 전쟁 1차 포에니 전쟁에 주도적으로 참전하였으나 패배하였습니다. 하밀카르는 9살 아들 한니발을 타티스 신 앞에서 로마를 쳐부술 것을 맹세하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한니발은 2차 포에니 전쟁(218~202)을 주도합니다. 이베리아반도의 에스파니아에서 10만 대군을 이끌고 출발하여 피레네 산맥,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 반도로 쳐들어 갑니다. 로마는 당연히 지중해를 이용해 침략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한니발은 허를 찔러 알프스로 넘어간 것입니다.

 

이후 티치노 전투, 트레비아 회전, 트라시메노호 전투 그리고 전쟁사에 길이 남은 칸나이 전투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고 로마의 본거지까지 위협하였습니다. 거의 로마를 궤멸시킬 수 있는 상황까지 갔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습니다.

 

로마는 한니발과의 직접적인 전투를 피하며 장기전으로 끌고 갔습니다. 이탈리아 반도 본토에 머문 한니발 군대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것에 전력을 쏟으며 로마의 끊어졌던 동맹국들과의 우호 관계를 하나, 둘씩 회복해 나갔습니다. 이러한 전략이 먹혀 한니발은 이탈리아 본토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고립되어 갇힌 신세가 됩니다.

 

 

카르타고 다른 장군들은 무능하였습니다. 식민지로 개척했던 이베리아반도에서 로마의 스키피오에게 대패하였습니다. 한니발의 군대와 합류하기 위해 북상하던 한니발의 동생은 로마의 노예군에게 패배하였습니다. 마침내 로마군은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지휘 아래 카르타고 본토를 공격합니다. 이런 상황에 몰리자 한니발은 로마 본토에서 철수하여 본국으로 돌아갑니다. 한니발은 자마 대회전에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에게 대패합니다. 이때 스키피오가 사용한 전술은 한니발의 전쟁 전술을 철저히 연구하여 나온 것이라 하여 더욱 유명합니다.

 

이후 한니발은 로마에 패한 조국 카르타고의 재건을 위하여 혁신을 주장하며 나섰지만 기득권 정치세력에 밀려 외국으로 망명합니다. 시리아 등으로 떠돌다 로마인 대장에게 체포되기 직전 자살하여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기원전 183년 또는 181년입니다.

 

인물 소개: 스키피오(Publius Cornelius Scipio Africanus, 기원전 235~ 기원전 183)

 

스키피오(Publius Cornelius Scipio Africanus) 전시물:Naples, National Archaeological Museum 작가:Sergey Sosnovskiy from Saint-Petersburg, Russia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는 기원전 204년 아프리카 자마에서 한니발과 대회전을 펼친 끝에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항복 조약을 이끌어내고 금의환향하였습니다. 아프리카누스라는 별칭은 자마 대회전의 전과를 기리는 뜻이 있습니다.

 

이러한 이전에 좌절이 있었습니다. 티키누스 전투, 트레비아강 전투에서 패하고 사망할 뻔한 아버지를 겨우 구출해 살아 나온 경험이 있습니다. 이후 한니발 군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쌓아 나갔고 마침내 자마 대회전까지 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이후에도 패배를 모르는 대장으로서 알렉산더의 재탄생이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끝은 좋지 않았습니다. 정적 카토의 끈질긴 모함으로 공금 횡령의 의심을 받았습니다. 결국 원로원에서 물러났고 다음 해 사망하였습니다. 나중에 공금 횡령은 동생의 소행이었음이 밝혀졌습니다.

 

감상평

로마인 이야기 2의 독자들은 10점 만점에 평균 8.4라고 평가를 내립니다. 한 독자는 1,200년 이상 지속하며 한때 세계 최고의 패권을 차지했던 로마를 돌이켜 보며 카르타고에게 멸망을 안겼던 역사는 그 어떤 패권 국가에도 되풀이될 수 있다고 감상평을 적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