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중요성
한강유역을 차지하게 되면 서쪽으로 중국으로 진출이 용이해집니다. 그리고 풍부한 자원과 넉넉한 자원을 갖게 됩니다. 지정학적으로 한반도 중심에 있으며 한강의 지류들과 강들이 있어 이 부근을 차지하는 나라는 한반도의 주도권을 가지게 됩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이 유역을 차지하기 위해 200년간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한강을 놓고 벌이는 싸움, 그리고 이를 견제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 등 우리 역사에서 가장 다이나믹한 일이 벌어진 이 때를 이야기 하도록 하겠습니다.
한강을 기반으로 강력함을 자랑했던 왕 – 근초고왕(4C)
백제는 한강유역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고이왕이 정립한 율령으로 인해 사회 체제도 잘 정비되어 있었습니다. 근초고왕때 이르러 백제는 강성하였습니다. 북으로 황해도 지역을 차지하였고 평양으로 진격하였습니다. 이 때 고구려의 고국원왕을 전사시킴으로 고구려의 국가적 위기를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 고구려는 국가정비에 힘을 쏟을 수 밖에 없어 북쪽으로의 위협을 없애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남쪽으로 눈을 돌린 근초고왕은 마한을 완전하게 정복함으로 호남의 곡창지대를 얻었고 이어서 가야까지 진출하여 지배권을 행사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왕위 부자세습을 이루어내기도 했고 중국의 남조와 무역을 활발하게 전개하며 백제의 전성기를 이루어 냈습니다. 아울러 왜(일본)와 교역을 하며 백제의 문물을 전파하기도 했는데 일본에 칠지도(일본 나라현 신궁에 보관)를 전해준 것은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근초고왕 이후로 고대국가의 세력은 백제-고구려의 2강과 부여, 신라의 2중, 가야 1약의 구도로 재편됩니다.
활발한 정복을 했던 왕 – 광개토왕(4C~5C)
소수림왕의 개혁으로 나라의 안정을 찾은 고구려, 소수림왕 이후 그의 동생 고국양왕이 7년간 통치를 하지만 이렇다할 성과는 거두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군사적으로 불안했었는데 이 때 그의 아들이 태자로 책봉됩니다. 아버지가 죽고 왕위에 오른 태자는 1년 뒤 군사 4만명을 몰고 백제를 향합니다. 맹렬한 기세로 백제의 10여개 성을 빼앗는 전과를 올립니다. 군사를 부리는데 능했던 왕은 우리가 잘 아는 ‘광개토왕’입니다. 백제의 강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한강 북쪽58개의 성을 점령하고 백제의 아신왕의 항복을 받아냈고, 아신왕의 동생과 백제의 신하들을 인질로 잡으며 남쪽출정을 마쳤습니다. 백제에게 빼앗긴 황해도 지역은 물론이며 한강북쪽까지 수복하는데 불과 4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광개토왕은 북으로 눈을 돌려 그동안 고구려의 골칫거리었던 거란을 치기로 결정합니다. 1년만에 거란을 쳐서 이기고 그들의 제물은 물론 거란에게 잡혀간 고구려의 백성들을 되찾았습니다. 이후 숙신, 동부여를 정복하였고, 후연을 공격하여 만주땅 대부분을 차지하며 동북아를 호령하였습니다.
백제는 고구려의 강함에 대적하려 왜와 동맹을 맺고 신라를 공격하였는데 다급해진 신라는 고구려에 구원을 요청합니다. 광개토왕은 5만명의 군사를 신라에 파견하여 왜군을 물리치고 이어 금관가야를 쳤는데 이로 인해 금관가야가 급속도로 약해지며 전기가야연맹이 붕괴되고 후기가야연맹으로 재편됩니다. 신라를 구원했지만 이후 백여년간 신라에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신라는 조공을 바칩니다. 광개토왕은 신라왕을 내물 – 실성마립간으로 교체할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했습니다. 경주에서 발견된 호우명 그릇에는 당시 광개토왕과 신라의 관계가 적혀있습니다.
외교와 전쟁을 잘했던 왕 – 장수왕(5C)
고구려를 강하게 만든 아버지 광개토왕이 죽자 그의 맏아들은 19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릅니다. 광개토왕에 비해 기반이 없었던 아들은 왕권을 강화하는 일에 힘을 기울입니다. 그는 수도를 국내성에서 평양성으로 옮겨 지역에 기반을 가진 귀족의 힘을 약화 시켰습니다. (아무리 고대시대라도 남의 땅을 함부로 빼앗을 수 없습니다. 만일 그런일이 벌어지면 나라가 안정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내성과 주변에 정착한 귀족들이 힘을 잃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 남북조와 외교에 힘을 써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합니다. 이로 인해 북쪽을 잘 대비한 그는 남쪽으로 진격하기 시작합니다. 수도가 평양성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남진은 더욱 효과를 발휘하였습니다. 자기가 할 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아버지의 업적에 뒤지지 않는 일을 해낸 그는 바로 '장수왕'입니다.
강력했던 고구려의 군대는 파죽지세로 남쪽으로 밀고 들어왔는데 백제는 이를 막기 위해 신라와 동맹을 맺고 저항하였고 북위에 사신을 보내 고구려를 공격해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북위는 백제보다 고구려와 사이가 좋은편이었고, 강력한 고구려를 자극하기 보단 백제와의 싸움을 부추기는 목적으로 이 일을 알려주었습니다. 그 결과 장수왕은 백제의 수도 위례성을 함락시키고 개로왕을 처형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광개토왕과 사이가 좋았던 신라는 백제와 동맹을 맺음으로 고구려와 적대관계가 되었습니다. 장수왕은 신라를 공격하여 지금의 경북지역까지 진출하고 한반도의 영향력을 행사하였습니다. 충주에 있는 ‘중원고구려비’는 장수왕의 정복전쟁을 알 수 있는 귀한 자료입니다. 서쪽으로는 아산만 중부지역으로는 경북영주, 동쪽으로는 영덕지역까지 진출하여 고구려 역사상 최다 남쪽으로 진격하였습니다.
장수왕은 정말 오래살았습니다. 98세까지 살며 나라를 다스렸기 때문에 시호가 ‘장수왕’이 되었습니다. 이후 장수왕의 손자 ‘문자명왕’이 부여를 완전히 정복하면서 고구려의 최대 영토를 확보합니다.
철저한 실리를 통해 신라를 일으킨 왕 – 진흥왕(6C)
장수왕의 남진을 막기 위해 백제와 신라는 손을 잡으며 우호관계가 되었습니다. 두 번의 동맹이 있었는데 백제의 비유왕-신라의 눌지마립간, 백제의 동성왕과 신라의 소지마립간과 맺은 동맹입니다. 백제와 신라가 힘을 합쳐 똘똘뭉쳐 고구려의 침략을 막아내며 두 나라 사이는 돈독해졌습니다. 이때까지 신라는 한 번도 주도권을 가지지 못했는데 신라에 뛰어난 지도자가 연속으로 등장하면서 서서히 상황이 달라집니다. 지증-법흥왕이라는 걸출한 두 왕의 치세에 이어 또다시 뛰어난 왕이 뒤를 이었으니 그가 바로 진흥왕입니다.
진흥왕은 화랑도를 국가적 조직으로 개편하며 인재를 양성하고 불교 교단을 정비하여 사상적으로도 통합을 이루도록 하였습니다.
고구려는 장수왕 이후 문자명왕, 안장왕, 안원왕이 차례로 안정된 통치를 하였으나 안원왕 말년에 심한 권력투쟁이 발생합니다. 안원왕의 부인 두 명이 서로 세력을 이루며 치열하게 싸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수선한 권력투쟁 끝에 왕위에 오른 양원왕. 그러나 강성했던 고구려는 조금씩 그 힘이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양원왕은 백제를 공격했는데 백제의 성왕은 신라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진흥왕은 이에 응해서 양국이 힘을 합쳐 고구려를 공격을 막아냈습니다(단양적성비), 그런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양국은 또다시 진격을 거듭하기 시작했습니다. 고구려의 양원왕은 두 나라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었는데, 이는 왕권이 불안했고 내정이 심하게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설상가상으로 북쪽에 돌궐이 침략을 하게 되어 북쪽을 막는 것도 심혈을 기울여야 했습니다.
진흥왕과 성왕은 진격하여 한강북쪽을 차지하고 진흥왕은 함경북도까지 진출하며 고구려를 크게 위협했습니다.(진흥왕순수비) 백제의 성왕은 평양성 진격을 진흥왕에게 제의했는데 고구려역시 진흥왕에게 한강유역과 황해도 강원도 지역에 이르는 땅을 주겠다고 제안하였습니다. 두 나라의 제안을 저울질 하던 진흥왕... 신라 입장에선 국력을 크게 들이지 않고 공짜로 한강유역과 한반도 북쪽을 차지할 좋은 기회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진흥왕은 백제의 제의를 거절하고 고구려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칼을 백제로 향하여 한강유역을 정복합니다. 이로써 굳건했던 나제동맹은 깨지고 백제와 신라는 원수가 됩니다. 진흥왕은 대가야를 정복하며 남쪽으로도 영토를 확장하였는데 낙동강 하류의 비옥한 땅까지 얻으며 신라의 전성시대를 열었습니다.
진흥왕의 정복으로 신라는 고구려-백제와 대등한 힘을 갖게 되었고 백제는 한강유역을 빼앗기며 신라의 압박을 강하게 받게 되었습니다. 한강을 차지한 신라는 중국의 수,당과 교역을 활발하게 하며 더욱 나라의 힘을 강하게 키워갔습니다.
반면 신라의 배신으로 한강을 빼앗긴 백제의 성왕은 이를 분하게 여겨 신라를 공격하였으나 관산성전투에서 전사하고 신라에 패하여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