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민의 기호에 맞춘 정가같은 노래
'잡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경기잡가란?
잡가에 雜은 섞일 잡입니다. 무엇인가 원형이 뚜렷하지 않다는 것은 이름에서부터 유추할 수 있겠습니다. 실제로 잡가를 명확하게 정의하기에는 음악적인 부분이나 상황이 시시각각 달라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누군가는 판소리도 잡가라 하기도 했고 누군가는 민요를 잡가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무엇인가 혼돈이 오기 쉬운데 잡가가 정리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 말기로 보고 있습니다. 시대적으로 반상계급이 많아지며 신분제가 점점 흐릿한 시절에 정악은 더 이상 궁중에서만 즐기는 음악이 아니고 평민에게도 두루두루 전파되는 음악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평민들도 하나 둘씩 흥얼거리는 노래가 되었고 어느덧 정악의 엄격함에 평민의 정서가 더해지기 시작합니다.
서울과 경기지역에서 많은 평민가객들이 정가를 평민의 기호에 맞게 부르기 시작하였고 이것이 잡가로 정착되었습니다. 잡가는 크게 두 갈래로 구분합니다. 가사에 뿌리를 두는 긴 잡가가 있으며, 시조를 편곡한 휘모리 잡가가 있습니다.
평민가객들은 소리에 재주가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의 소리꾼들이 이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정가에 능했으며 가곡, 가사, 시조에 대한 조예가 깊었습니다. 우리가 경기잡가를 들을 때 정가를 듣는 느낌을 받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12잡가(긴잡가)
잡가는 팔잡가(八雜歌) 잡잡가(雜雜歌)의 12곡, 12잡가로 구성됩니다.
유산가(遊山歌) ,적벽가(赤壁歌), 제비가(--歌), 집장가(執杖歌), 소춘향가(小春香歌), 선유가(船遊歌), 형장가(刑杖歌), 평양가(平壤歌) 의 팔잡가와 십장가(十杖歌), 달거리, 출인가(出引歌), 방물가(--歌) 의 잡잡가로 12곡입니다.
잡가의 특징을 살펴보면 춘향가의 스토리를 담은 곡, 적벽대전 마지막에 조조와 관우가 만나는 화용도의 내용 등 민간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가 그 안에 담겨 있습니다. 정가 스타일인데도 잡가를 평민이 좋아할 수에 없는 이유는 가사의 서사성 때문인 것 같습니다. 스토리가 있는 정가. 그것도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사랑이야기나 삼국지의 이야기가 담겨 있으니 듣는 재미가 솔솔했을 것 같습니다.
휘모리 잡가
휘모리 잡가는 시조에서 파생된 노래인데요. 느릿느릿하고 품격있는 시조.. 바꿔말하면 지루할 수 있는 시조에 평민이 좋아할 만한 타령장단을 사용합니다. 평시조에서 늘어지기 쉬운 중간 부분을 빠르게 엮어서 바꿔 ‘푸른산중’, ‘창내고자’처럼 수잡가가 파생되어 시조보다 경쾌한 가락을 즐길 수 있습니다. 내용도 풍자적이고 재치있는 경우가 많아 이같은 타령장단이 더욱 어울립니다.
잡가의 예술성
잡가는 평민이 좋아하는 노래라고 언급한 만큼 대중성 있는 노래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잡가는 정가가 발전된 형태로도 볼 수 있습니다. 정가가 가진 예술성에 대중적 요소가 가미된 것일뿐 예술성 그 자체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서양음악에서도 이같은 사례를 볼 수 있는데, 중세시대 엄격한 교회 음악이 대중음악과 섞여 어떤 것이 교회음악이고 어떤 것이 대중음악인지 모르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예술성이 없다고 단정하지 않습니다.
잡가는 긴 호흡을 가지고 있으며 대중이 좋아할 만한 가사가 있다해도, 조선후기의 대중의 기호입니다. 현재 우리가 듣기에는 아무래도 호흡이 깁니다. (요즘시대가 빠르기 때문일까요? 상당히 가사와 가사 간 호흡이 깁니다.) 긴 호흡 속에서 파생되는 수많은 떨림음과 꾸밈, 음정적 표현 등 정가와 비교하여 손색이 없는 예술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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